<‘서울교육’ 가을호 권두칼럼: 조희연 교육감>
서울에서 꽃피우는 ‘모두가 행복한 혁신미래교육’
안녕하세요. 교육감 조희연입니다. 더위의 한 복판에 있을 땐 이 더위가 언제 끝날까 싶더니 어느새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이렇게 지면으로 인사도 드리고, 서울교육의 방향에 대해서 말씀드릴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제가 취임한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습니다. ‘초중등교육’과 ‘교육행정’이라고 하는 저에게는 낯선 두 가지 큰 영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서울교육의 방향을 정교하게 설정하는 데에 공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만, 자사고 평가 문제 등 만만치 않은 뜨거운 당면 현안을 빠른 시간 내에 지혜롭게 풀어가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각계각층 서울교육가족과 시민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신중하게 찾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시점에 필요한 것은 서울교육의 단·중·장기 정책 방향과 구체적인 과제를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확정해나가는 것입니다. 저에 대한 호칭을 빌려 재간있게 이름 붙여본다면 서울교육의 ‘조감도’를 그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기 펼쳐왔던 서울교육정책들의 장점과 혁신적 요소들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로드맵을 완성해가는 일입니다. 그 구체적인 작업은 <혁신미래교육추진단>이 충분한 협의와 진지한 논의 과정을 거쳐 진행하겠습니다만, 저의 취임사 등 여러 자리에서 밝힌 서울교육의 대괄적 방향과 핵심 정책들의 기조는 흔들림없이 유지될 것입니다.
교육과 사회의 선순환적 관계로
저는 교육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교육이 시대의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와 교육의 긴밀한 상호 순환적 관계의 관점에서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교육의 ‘시대 조향성’은 충분치 못합니다. 심지어 아직도 학교 안은 구시대적인 작동 원리와 문화가 잔존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또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교육의 자기 혁신적 걸음은 매우 더딘 편입니다. 뼈아픈 표현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와 교육은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병든 사회, 아픈 교육”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교육이 개인과 사회의 희망이 되지 못하고, 사회의 불평등과 불합리성을 함축한 채 동시에 그것을 재생산하는 핵심 기제가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 모순’이 임계치에 달했다는 지적이 결코 과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큰 상처로 남은 ‘세월호’가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다른 사회이어야 합니다. 늦었지만 다행히도 교육의 근본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적 문제의식과 공감대가 커졌습니다.
서울교육의 두 가지 구동축: 혁신과 미래
저는 우리가 추구할 서울교육을 ‘모두가 행복한 혁신미래교육’이라고 정했습니다. ‘모두가 행복하다는 것’은 교육의 공공성과 평등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또한 ‘교육복지’도 함축한 표현입니다. 중심 개념인 ‘혁신미래교육’은 교육의 혁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시작된 혁신학교의 물결이 서울에서도 도도한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혁신학교’에만 갇힌 혁신이 아니라, 모든 학교, 교육 일반에 적용될 ‘혁신성’의 대대적인 확산과 심화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궁극에는 혁신이 더 이상 특별한 의미가 아니어야 합니다. 다양한 혁신적 학교 모델이 학교의 새로운 전형으로 자리잡고 혁신교육이 교육의 원형을 이루는 날이 와야 합니다.
하지만, 이전의 교육 혁신의 단순한 연장이어서는 안됩니다. 서울이라는 지역 단위, 초중등이라는 학교급 단위, 학교라는 공간 단위에 머무르는 소극적인 혁신이 아니라, 그 틀을 넘어서는 능동적인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미시적이고 근시안적 사고를 깨고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안목 속에서 미래를 조망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서울교육이 ‘과거’ 인습과의 과감한 결별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뛰어 넘어 ‘미래’로 가야 합니다. 혁신성과 미래성이 서울교육을 구동하는 두 축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세계화•지식정보화시대의 미래지향적 혁신교육”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래지향성 1: 열린 세계민주시민 육성
미래지향적인 교육이 담고 있는 몇 가지 핵심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새로운 가치입니다. 서울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교육과정에 담겨야 할 내용 모두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육에 있어서의 인식 지평의 세계사적 확장입니다. 이것은 열린 세계민주시민을 육성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은 대한민국이지만 시각과 지향은 세계적 맥락에 놓이도록 해야 합니다. 다양한 국가, 민족, 문화적 차이 속에서 인류의 공존과 상생을 추구하는 교육이어야지만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이끌어갈 미래 세대를 충분히 길러낼 수 있습니다.
미래지향성 2: 사회 불평등 극복의 지렛대
두 번째는,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초중등교육은 대학입시에 상당 부분 종속되어 있습니다. 대입은 한 차원 높은 교육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즐거운 과정이 아니라 혹독한 경쟁을 통한 인생 성패의 관문입니다. 대학의 서열이 현격하고, 더 나아가서는 학벌 구조가 강고하기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학벌사회’는 직업불평등과도 밀접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사회 불평등 구조를 극복해나가야 하겠지만, 초중등교육 자체가 이러한 대학체계 문제와 사회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힘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단순히 우리 아이들을 그러한 사회속으로 던져 넣고 그것에 맞춰 살아가는 수동적인 인간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가꿔가면서도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정의로운 이끌어갈 주체적인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서울교육이어야 하겠습니다.
미래지향성 3: 교육 시•공간의 확장
세 번째는, 이러한 교육을 담아내는 행정적, 공간적 틀의 재구축입니다. 현재의 교육제도상 교육청 업무는 ‘학교’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을 넘어서기 쉽지 않습니다만, 그 한도 내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교육 구현을 위한 방법론의 최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시, 지자체들과의 새로운 교육 협력 모델을 창출하려고 합니다. 방과후와 학교밖까지 유기적으로 아우르는 큰 교육 프레임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저는 한국이 동아시아형 교육복지사회로 앞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출발점이 서울교육이었으면 합니다. 생소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굳이 ‘동아시아형 교육복지사회’라고 부르는 이유는, 비슷한 역사적 배경과 정체성을 갖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고유한 교육복지모델을 선도적으로 제시하고 이끌어갔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북유럽형 교육복지모델의 동아시아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서구를 급속하게 따라잡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추격 교육’을 실시한 결과 ‘압축 성장’과 경쟁력 상승이 이뤄졌고, 이른바 ‘고교평준화’에 따른 균질적이고 평등한 교육기회 제공을 통해 보편적 교육복지의 초석을 쌓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반면 획일적인 입시경쟁교육과 권위주의 학교 문화 등 부정적 양상도 나타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자율형사립고 등에서 보듯 ‘수직적 다양성’의 폐해로 귀결되었습니다.
동아시아의 선도적인 교육복지모델 구현과 ‘삼균주의’
우리 사회는 교육 평등에 대한 매우 강한 국민적 공통 의식과 합의가 존재합니다. 멀지 않게는 그 기원을 임시정부의 이념적 기반인 조소앙의 ‘삼균주의’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정치균등, 경제균등에 이어 교육균등을 중요한 국가 운영과 사회 원리의 근간으로 삼고자 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소중한 정통성이자 현 시대에 다시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최근 자율형사립고 평가와 재지정 여부로 여론이 뜨겁습니다. 자사고도 위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착실하게 서울교육의 밑그림을 그려야 하는 시기에 민감한 교육 이슈에 교육 행정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사고를 통해서 우리 교육이 가야할 방향을 점검하고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사학의 공공성 회복과 자사고
사립학교는 일제시대부터, 공교육 기반이 취약한 현실에서 국가 교육을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국가 재정 기반이 취약한 시기에 설립자가 사재를 털어 ‘교육을 통한 사회 공헌’의 취지를 갖고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했습니다. 일부는 과도한 사립 입시명문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었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지만, 고교평준화 시기를 거치면서 전체적으로는 사립고등학교도 균등한 공교육 기관으로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국가 교육 재정이 많이 확충되면서 사학 지원 규모는 늘어났지만, 사학이 2세대, 3세대를 거치면서 본래의 공공적 ‘교육가 정신’은 많이 쇠퇴하고 사유 재산으로 인식되거나 영리적인 ‘가족 기업’ 성격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입시명문학원화하고 있는 사립학교는 교육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초기의 사학 정신을 갖고 사회공익기관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자사고 또한 그러한 사학 본연의 공공적 역할을 일정 부분 이탈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좋은 교육을 받고자 하는 대중 일반의 욕구야 인지상정이겠으나 그것이 ‘돈’에 의해 좌우되거나, 과도한 성적 서열을 낳는다면 그것은 사회공공성과 보편적 이익의 허용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사고가 절대적인 부유층에게만 열린 학교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일정하게 경제력이 작동하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성적과 입시, 그리고 대학과 직업까지 이어지는 세대 대물림의 중요한 기제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적어도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우리 사회가 지금과 같은 심각한 경제적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현격한 격차, 직업의 수직적 서열을 극복해가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방책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만의 특유한 고질적 학벌구조를 깨는 것이 필수라고 다들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학벌주의보다는 학력주의, 학력주의보다는 능력주의로 가는 것이 공정한 사회임이 분명하고, 더 나아가서는 성실함과 노력, 그리고 사회공동체에 대한 기여도가 보다 더 중요한 가치평가의 준거가 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우리 사회가 조금씩 진일보하고는 있지만, 하루 아침에 근본적인 개혁과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그와 같은 사회의 불합리한 속성이 지배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헌법과 교육기본법이 충분히 강조하고 있듯이, 적어도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결과까지는 모르더라도 기회만큼은 평등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개천에서도 용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대원칙을 서울교육에서 다시 확인하고 보다 확고히 하려는 것입니다. 그 흔들림없는 교육평등의 기조 위에서 꽃피는 다양한 자율성과 창의성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자사고도 꼭 필요하다면 이러한 맥락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른 일반고, 특성화고 등과 조화롭게 풍요로운 전인교육을 담당하는 공교육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수평적 다양성 확장에 동등하게 참여할 때 비로소 법률에 규정된 자사고의 설립 취지인 “학교교육제도를 포함한 교육제도의 개선과 발전”(초중등교육법 제61조(학교 및 교육과정 운영의 특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목적에서 일반고는 물론이고 특목고, 특성화고, 자공고 등 그 어떤 학교 유형도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제가 서울교육 방향에서 <중점 과제>로 삼고 있는 △일반고 역량 강화와 고교 균형 발전 △공존과 상생의 열린 세계민주시민교육 △학교평등예산제 △강남북 교육 격차 해소 △맞춤형 진로•직업교육 확대 및 강화 등이 바로 이러한 교육 기조에 따른 중요한 정책들입니다. 이것은 크게 보면 사립교육기관의 공공성을 어떻게 보다 보편적으로 확대해나가느냐의 문제이며 그런 차원에서 자사고 뿐만 아니라, 사립중학교, 사립초등학교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 그리고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립유치원과 공립유치원의 기능적 상생 구조를 위한 공공적 사립유치원 모델을 찾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물론 그에 걸맞는 지원도 아끼지 않을 예정입니다.
혁신미래교육의 출발: 새로운 주체와 혁신적 교육행정
위와 같은 중요 정책 과제들을 추진하는 매우 중요한 전제 조건은 주체를 튼튼히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혁신미래교육은 그에 걸맞는 주체를 동반하지 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기존의 학교를 구성하는 고전적인 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 외에 이제는 시민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한 차원 높은 열린 시민사회적인 ‘교육 주체 블록’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앞서 말씀드린 ‘마을결합형학교’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또 하나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교육행정의 혁신입니다. 우리에게 교육혁신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당연히 그것에 본질적으로 조응하는 교육행정혁신을 통해서 가능할 것입니다. 이것을 ‘소통하며 지원하는 어울림 교육행정’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민에게는 이웃같은 교육행정, 학교와 교사에게는 친구같은 교육행정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과정을 통해 비로소 서울교육이 지향하는 이상인 “질문이 있는 교실, 우정이 있는 학교, 삶을 가꾸는 교육”이 실현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제 그 큰 길에 들어섰습니다. 꿋꿋이 걸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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